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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비평문- 국제 개발 대학원- 김건용선교사

Piamsuk 2022. 8. 20. 00:00

인용비평문-국제 개발 대학원-김건용선교사

1.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 이슈와 필요성-김연수선교사

저자는 한국자신학화의 원칙 7가지를 열거하면서 6번째로 위기와 변혁의 신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한국의 역사속에서 겪어왔던 한민족의 수많았던 고난과 슬픔, 위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극복할 뿐 아니라 변신을 위한 기회로 삼았기에 “한국신학이 다른 3세계가 겪고 있는 수많은 슬픔과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고 했다.

인용비평-역사를 평가하는 방법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어떠하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주관성은 외부의 어떤 환경이나 다른 요소들로 부터 영향받지 않고 공명해야 한다. 과연 역사가가 오l부의 환경에 영향을 안받을까?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나 믿는 사상등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다. 물론 역사가 자신은 자기가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이들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매우 주관적인 경우도 많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신학화작업이 자기민족 중심으로 치우치게 되면 보편,타당성,합리성이라는 진리의 구성요소가 결여 될 우려가 없지않아 있게 된다.

2.자신학과 자선교학의 본질과 내용-성남용목사

저자는 5)자신학 시행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언급하면서 세 번째로 “실재론적 논의가 아닌 인식론적 논의로 제한시켜야 한다.” 고 했다.

인용비평-선교사는 저자의 명제를 수정할 필요를 느껴 다음과 같이 수정해 보려고 한다. 즉, 실재론적 바탕위에서 인식론적 논의도 가능한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신학의 근거는 인간의 이성이나 자기의식이나 경험이나 체험이나 교회의 전통에 있지 않다. 신학이 형성되는 근거와 그 내용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성경을 통하여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하여 형성되고 성립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서 비판받아야 하며 재구성되어져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진리지만 이 위에 문화를 잘 이해 분석하여 복음이 손상됨이 없는 한에서만 복음과의 관계성을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3.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의 발전 배경과 현황: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를 중심으로-안성호교수

이문장의 경우는 아시아의 신학이란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경의 재해석을 강조한다.예를들어 2008년도 앤드류 읠즈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세계기독교학 교수인 Cathy Ross가 공동 편집한 “21세기의 선교학(Mission in the 21st Century)"이라는 책에서 이문장은“비서구권의 성경읽기:아시아인의 관점에서(Reading 속 Bible in 속 Non-Western Church:An Asian Dimension)"이라는 논문을 편찬했는데 여기서 서구의 헬라철학의 이원론적인(Dualism) 관점이 아닌 아시아의 헤브라임적인 총체적(holistic)이며 영적인(Spiritual)이며 다양한 관점(multiple perspective)으로 해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한다.

인용비평-저자가 언급한 아시아인의 헤브라임적 사고는 결코 다양한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헤브라이즘’은 히브리 민족의 사람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문화 전통이 서구화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헤브라이즘은 유일신사상이다. 유일신 사상은 단순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유일신 사상은 신은 오직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오직 야웨만이 신이고 그 밖의 어느 것도 신이 아니라는 생각은 유대민족으로 하여금 선민의식을 가지게 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전지전능의 속성을 가진, 초월적 존재인 야웨만을 오직 신으로 믿고 이외의 모든 자연에 대한 숭배를 강하게 거부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자연이란 야웨의 놀라운 솜씨를 드러내 보이는 대상 즉 피창조물에 불과한 것이고 인간이 야웨 이외의 그 어느 대상을 신처럼 섬긴다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된다. 야웨가 모세를 통하여 인간에게 준 십계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첫 계명은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야웨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는 범죄행위로 판단하고 있음을 일러준다.  그런즉 자연신을 섬기는 다른 민족들과 유대인들은 대립하였다. 유대인들과 주변 민족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만든 핵심 원인은 유대민족이 자연신을 섬기는 다른 민족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다. 

4.한국 자신학과 자선교학 정립을 위한 리서치-조명순선교사

1)저자는 한국 자신학이 될 수 있는 주제로 한국특유의 내용(Contents)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응답으로 새벽기도,심방,효 사상,삼자원리,성경공부,가난극복,성령사역,고난,한등, 한국교회의 성장동력원인이 되었던 요소들을 거론하였다.

인용비평-한국교회의 성장동력원인이 되었던 일련의 현상들이 학으로서의 체계를 갖추려면 몇가지 구성요소를 지녀야 하는데 1)체계적으로 기술이 가능한가? 2)규칙발견이 가능한가? 3)이론과 법칙 형성이 가능한가? 4)현상을 설명 판단하고 예측 통제가 가능한가? 다시말해서 현상이 분명하고 일관된 법칙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법칙이 다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요소들은 논리를 넘어서 안정적이지 않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인과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5.자신학화-자선교학화가 한국선교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연구-임종표선교사

저자는 로드맵없는 비서구 교회 선교한국 선교를 언급하면서 “지난 30년동안 첫단추를 잘못 끼운 한국선교”라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지적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다. 한국선교는 그 시작부터<선교학적 준비의 부재>로 출발했다. 다른 말로 하면 서구 선교학이라도 제대로 숙지하고 선교를 시작해야 할 한국선교가 그리하지 못한 결과, 지금 그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선교학적 준비란 선교의 기본 틀이 없이 선교적 행위들(Missions)이라는 돌위에 선교(Mission)라는 명목아래 가시적 선교가 정적 선교의 본질을 덮고 대치한 선교의 모습을 말한다.

인용비평-이제 겨우 한세대를 맞이하는 한국선교가 수세기의 역사를 거치면서 갈고 다듬어진 서구선교를 빚대어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수가 없지 않아 있다.

한국선교에도 서구선교와는 차별화된 한국자선교학적인 긍정적인 모델이 있다.

1)교회중심적인 선교-한국선교가 서구선교와는 전혀 다른 독특함이 있다면 교회가 선교의 직접적 수행기관 되는 선교형태를 지녔다고 볼수 있는데 교회자체내에 선교기관을 두고 전 교인들에게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라”고 동원하며 선교의 후원자가 될 것을 권면할뿐 아니라 선교회 자체 운영규칙을 두며 선교사의 선발과 훈련,파송조건과 사역비 규정과 노후대책, 사역방향등을 명문화하여 성경적인 바른선교를 지향하기도 하였고 정기적인 선교보고와 선교지 방문등으로 사역을 조정 관리해 나갔다.

2)교단선교화-선교에 참여하는 교회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몇몇 교단은 개교회 중심적 선교에 머물지 않고 교단적 차원에서 선교하는 교회들을 연합하여 교단선교부를 만들어 그동안 지교회에서 하던 선교적 행정업무를 통합해 나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층 더 발전시켜 선교사의 선발과 훈련,파송,사역배치,선교비 관리,복지후생 등등 선교전반에 관한 업무를 추진해 나가게 되었다.

6.선교신학에 있어서 본문과 상황의 통전성-신경규교수

저자는 맺는말로 본문과 상황의 통전적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며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자들의 전향적인 자세로 1)복음주의자들은 성경본문 그자체에 지나치게 천착하여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시인해야 하고 2)에큐메니칼 선교신학자들은 상황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용비평-로잔 언약에서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전도와 사회참여에 대한 올바른 관계의 정립일 것이다. 로잔 언약은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전도와 사회, 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했다. 또 로잔 언약은 사랑에서 나온 예수님의 전도(word)와 봉사(deed)를 이분화하거나 고립시킬 수 없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사회참여(social responsibility)에는 봉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제, 박애사업이 있는가 하면, 정치, 경제적 활동, 사회 구조변경을 추구하거나 정의 구현을 위한 사회, 정치활동이 있다.

물론, 사회참여를 이야기할 때 가져야 할 긴장점이 있다.

먼저는 "전도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의 영적 고통과 영원한 운명이 이 사회의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더 큰 것임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전도를 통한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없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로잔 운동은 필연적으로 제자도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두 번째로, 교회는 "어떤 특정한 문화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계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나타나는 문제점은 복음 자체보다 제휴된 체계를 옹호하고 고수하는 일을 더 중요시하게 되며, 또 교회가 정당이나 정치적 노선과 동일시되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인의 사회참여가 복음의 정수를 무시하고 결국은 무미건조한 운동으로 끝맺은 아픈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은 또 다른 극단-사회참여에 배타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를 반추하여 복음의 정수를 회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상, 사회참여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의 복음 선포와 제자도는 자체로서 반쪽의 복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7.한국선교사들의 신학교육 사역에 대한 반성-김활영선교사

저자는 미래신학교육을 위한 제안을 하면서 신학보다는 성경의존 사고로 돌아가서 가르치는데서 출발하여야 하고 신학교육이라는 말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자를 찾지말고 실천가를 중심으로 말이나 책보다는 삶으로서 강의하는 교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용비평-선교지에서의 신학교육은 선교지 교회를 위할 뿐 아니라 현지 교역자를 배출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교회지도자는 신학지식에 해박하여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므로 바른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단적 사상에 능통하여 교회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학, 영성이 요구되고 사역의 면에서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자신학화를 넘어 초문화 신학으로-고광석목사

저자는 “자신학화가 필요함에도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자신학은 결국 상황신학의 일환으로서 신학적 다원주의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학화을 넘어 초문화적 신학화를 시도해야 된다.” 고 언급하였다.

인용비평-초문화적 신학화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무시하여 문화의 획일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문화에는 다양성, 보편성, 상대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1)다양성-문화는 각 사회가 처한 자연 환경,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2)보편성-문화는 각 사회마다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다.

예로써 모든 사회에는 언어가 있고, 종교와 예술 활동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3)상대성-각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그들에게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

각각의 문화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가지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따라서 문화 사대주의자나 자문화 중심주의를 조심하고 그사회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로, 각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맥락에서 성경을 해석 이해하여야 한다.

9.전문인 선교 자신학화를 위한 신학적 방법론-문누가선교사

세군도의 해석학적 고리는 전문인 선교학을 연구하는대 있어서도 선교 프락시적 차원의 길을 제시한다.

그의 논문 “Toward a Contextually Appropriated Methodology in Mission Theology"에서 밴 엥겐은 상황적으로 적절한 선교학을 위한 5단계의 과정을 요약하는데 그중하나가 프락시스적 과정으로서 이는 적절한 행동으로 살아내거나 또는 신학적 사고를 구체적 행동으로 변환해내는 것을 말한다.

일부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의 경우와 같이 세군도에세 있어서 행동과 사고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선교 프락시스에는 행동-사고-행동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있다. 이들에게는 행동자체가 신학적이다.

왜냐하면 행동이 그에 대한 사고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사고는 다시 행동의 변혁을 유발하며 그에 따른 사고의 변혁을 유발한다.

이런 면에서 전문인 선교사의 선교는 본질적으로 프락시스적이다. 왜냐하면 전문인 선교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인 선교신학을 연구하는 것은 전문인 선교사들의 순수한 신학적 사고를 추구하는 것일 수 없고 그들의 선교적 프락시스 즉, 행동-사고-행동의 해석학적 고리를 연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용비평-선교는 그자체가 근본적으로 proxeological 하기 때문에 목사 선교사냐,전문인 선교사냐의 구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선교는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수행되는 복음 증거 활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에 의해 일정지역·위치에서 일어난다.

선교는 사고와 행동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매번 변할 수 있으므로 확정적일 수 없고 늘 현재 진행형이다.

역동적이고 유연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10.아랍의 신학과 자신학화-공요셉박사

저자는 “지금까지 아랍 무슬림 상황 속에 들어갈 때 한국인에게 이렇다 할 선교 신학이 없었다. 이슬람권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이 신학은 공부했으나 무슬림 선교신학을 배운 적이 없고, 성경을 주해하는 실력은 강하나 아랍 기독교인 혹은 아랍 무슬림 상황으로 주해하는 능력과 관심은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꾸란과 이슬람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행하고 이런 연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방법은 우선 이슬람에 대한 ‘무슬림들의 이해와 해석’을 알아야 한다. 또 무슬림이 이슬람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진위 여부를 물어야 하고, 무슬림들이 말하는 이슬람과 우리의 기독교가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어느 부분에서 유사점이 있는지 체계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용비평-이슬람권 선교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여 차근차근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아랍언어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현장을 숙달시키는 훈련은 이슬람권 선교를 이루는 첩경이 될 것이다.

예를들어.선교사는 아랍에서 신학 공부를 다시하게 되면 그들의 신학과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효과적인 선교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슬람 선교는 언어와 단어가 가지는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전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차근차근 제대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 선교는 영혼이 변화되고, 인격과 가치관, 세계관이 변화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선교대상에 대한 사전 목표가 분명하고 그에 따른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인 선교사에 의한 문화 사역이나 교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한국에 소재한 외국인 근로자 교회내에서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을 발굴하여 전문인 선교사로 육성,파송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할 것이다.

11. 중앙아시아에서의 한국형 선교전략: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김형욱선교사

저자는 중앙아시아에서의 한국형 선교전략을 제안하면서,두 번째로 바른 신학교육을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의 영적인 토양을 연구하면,왜 이곳에 오순절 교단과 은사주의 교단 배경의 교회에 사람들이 몰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들의 이슬람이 수피와 샤머니즘의 성향이 강한‘민속이슬람’인 것이 그 힌트가 된다.다만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교회안에도 성령론에 균형이 깨어지고 지나친 은사중심주의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신학적인 혼란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선교사들은 이곳의 지나친 은사주의 현상들을 균형잡힌 신학으로 바로 잡아갈 필요가 있다.....(생략)...,

이제는 성장과 더블어 성숙으로 나아가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중앙아시아 교회가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도영성을 통한 바른 신학교육의 역할이 크다.

인용비평-선교지의 신학을 성경적으로 바로 세우는 일은 수월한 일은 아니다.

중앙아시아 교회의 경우,선교사들이 무리하게 신학을 가르쳐서 현지교회를 교정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반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교지 신학 교육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해온 것이나 한국적인 내용들을 그대로 전수하는 식으로는 무리가 될 수 있다. 현지인이 중심과 핵이 되는 교육이어야 한다. 신학 교육과 더블어 영성,실천이 겸비되는 전인격적 교육을 지향하여야 하며 철저히 교회를 위한 신학 교육이어야 한다. 신학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만 다른 지역의 신학과도 균형이 필요하다. 교육의 방식도 획일화된 기존 방식보다는 선교현지의 이해정도 수준에 맞추어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적용해 나가야 한다.12.중국교회의 적합한 자신학화를 돕기 위한 선교적 필요-한수아선교사

저자는 중국교회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분리가 존재하지만 한국교회와 같은 교단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교단별로 신학교를 세우고,교단별로 목사안수를 주는 행동이다.이것은 본의 아니게 중국교회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만약 이단등의 문제 때문에 목사안수가 대세라면 외국인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통해서 안수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외국교단이나 단체는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성과를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어서 교회의 하나됨에 장애가 된다.또한 이런 외국단체에서 안수받은 사람들은 외국교단의 신학(예로 장로교는 깔벵주의)을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현지신학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

현지교회를 세우는 방향으로 안수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인용비평-선교지 교회를 교단화하여 공신력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중국교회를 자치하도록 하는 것은 선교사역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선교지 교회를 교단별로 나눠 신학교를 세우고,교단별로 목사안수를 주는 것이 결코 중국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다.

다만,그교단이 현지교단이 아니고 한국교단의 노회적 성격을 띄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선교는 다면,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바울도 여러사람들과 사역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수납하였다.

중국교회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선교의 개척시대가 끝나고 안정적인 시대가 왔을 때 여러 선교단체나 교회들이 연합하여 중국 현지교단을 세워 선교사역의 결과들을 중국인 교회와 교인들에게 이양하고 자립,자치,자전을 이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13.태국 교회의 자신학화에 관한 제언-김중식교수

저자는 자신학화의 주체가 “현지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자신학화란 “외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들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혹은 성경으로 부터 자기 자신의 신학적 이해를 발전 시켜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현지에서의 자신학화는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교회 지도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인용비평-태국은 한국보다 복음을 받아들인지 반세기나 앞서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국가에서 파송되어 온 선교사들에 의해서 다양한 선교적 활동들이 전개 되고 있는 피선교지역이다.아직도 적지않은 수의 선교사에 의해서 교회가 개척될 뿐 아니라 선교단체나 선교사에 의해서 유지되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하루에도 몇수십교회가 문을 닫고 또 세워지고 하기를 반복하는 등,오랜 기간동안 미자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교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는 정부에서 국가통치의 한 부분으로서 종교를 관리하고 있는데 특히,태국 개신교를 3개 대단체(CCT-태국 기독교 총회,복음주의 연맹,침례교)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어

태국교회의 자신학화를 논할 때 3대 단체와의 연대속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태국 기독교총회(CCT)는 태국의 유일한 합법적 기독교 총회로 재정적 자립도,규모나 역할등에서 단연 독보적이며 태국의 자신학화를 세우는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반면 복음주의 연맹이나 침례교단은 주로 선교단체들로 성된 친목단체의 성격을 띄고 있어서 교단적 성격은 미약하여 행정력,의사 결정권이 없으므로 태국교회의 자신학화를 논하기에는 대표성이 약하다 하겠다.

따라서 태국교회의 자신학를 논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단체 선정이 먼저 이루어지고 어느 주제를 다를 것인 가를 선정하여 각교회의 동의하에 심도있는 논의와 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4.징검다리 접근법을 통한 무슬림 선교전략-하영광선교사

10)교회의 돌-교회를 시작하는 것-저자는 “선교의 최종목표를 교회를 세워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형태의 교회를 세우는 가는 그교회를 세우려는 현장의 상황에 달려 있다.가정교회는 무슬림현장에서 시도할 수 있는 성경적 모델이다.

인용비평-“선교의 목표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가정교회가 무슬림현장에서 시도할 수 있는 성경적 모델이다.”라는 것은 선교를 유형교회 개척 측면에서만 바라본 견해이지만 선교는 다양성,다면적인 활동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 현장에서의 교회를 개척할 경우라면 유동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신분의 노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개인전도를 통한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하고 모임장소도 불규칙적으로 할 필요도 있다. 이에 따른 적합한 교회형태로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이머징교회(Emerging Church)를 권장하고 싶다.

 

15.이머징교회 운동에 대한 개혁주의 선교신학적 비평

이머징교회가 미래교회를 대신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이머징운동이 대두된지도 벌써 30년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들리고 있다. 다시말해서, 현실적응이 잘 않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해보고 싶다.

어떤 이론이나 운동원리들이 소개되고 현실적응이 될려면 보편적이고 타당하고 적응성이 있는 실제적인 예가 있어야 하는데 논의될 만한 이머징교회라고 특정할 교회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아 한계에 부딫친다.

어떤 가설이 현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론적,역사적.과학적으로 충분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머징교회는 성경적 지지가 약할뿐 아니라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교회나 이론상으로 봐도 충분한 지지를 못 받고 있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한국인 정서로 이머징교회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머징교회가 미래를 대처할 대안으로서의 교회로 받아들일지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험적으로 나마 현대교회의 한계를 뛰어남는 다양한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늘 유동적이었고 뛰어난 적응성을 가지고 있었다.

 

16.선교정책으로 비추어본 한국선교와 정책선교를 위한 실천계획

한국교회가 선교사 2만명시대를 맞이하고 선교 선진대열에 선발 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치에 걸맞는 선교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이제는 성경적이며 현지실정에 맞는 선교정책을 가지고 정책선교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선교사 파송단체는 각지역 특성에 알맞은 선교정책을 개발하고 선교사들을 재교육시켜 지역별 또는 권역별로 정책선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별,권역별 선교정책은 누구 세울 것인가?

첫째는 파송단체가 주도권을 갖고 파송교회 대표, 선교전문가 및 선교 행정대표,선교사 지역대표로 구성된 지역별 선교 정책위원회를 두고 계속적인 정책을 연구,발굴해 나가야 한다.

특별히,과거에는 선교사가 배제된 채로 정책들이 수립되어 선교사들과는 불통된 상태에서 정책들만 세워졌었다.

둘째로 지역별 정책위원회서 마련된 선교정책을 신입선교사 훈련 기간부터라도 교육자료로 활용하여 신참,고참 선교사들을 같은 정책안에서 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파송단체는 표준화된 정책선교 사역평가 기준안을 마련하여 일정기간(1텀)을 사역한후 정기적으로 선교사의 사역을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더욱 발전된 정책을 꾸준히 보완 계발시켜야 한다.

17.선교지 위기관리

선교지에서의 위기상황은 선교사수의 증가에 따른 지역의 다양화, 활동의 다양화에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특히,분쟁지역에서의 재난 위험이나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돈을 목적으로 하는 납치사건,선교사가 외국인이라는 법을 악용하여 발생하는 사기 사건.등등, 위기상황도 다양하여 그에 따른 예방법이나 실제 재난이 발생했을 때의 행동요령을 마련하는 일조차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뒷짐만 지고 안일한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지혜로운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들을 예상하고 그에 따른 통합적인 단계별 행동요령을 마련하여 선교사들에게 숙지시키는 일도 선교사역을 원활히 이끄는 요소중의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1)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들이 무엇이 있을지 선교 권역별 또는 지역별로 망라하여 예상해 보는 것이다.

2)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행동요령을 상황별로 통합적이면서 단계적인 것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3)모든 선교사들에게 안전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유언장제도를 마련하여 위기 상황하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18.선교적 관점으로 조명해 본 WCC의 부산 10차 총회

WCC는 부산 총회의 여타 문서에서도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이 종교다원주의자들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으레 자주 사용하는 모호한 구사법을 활용, 자신들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WCC의 선교관은 세계의 불의한 구조의 변혁이며, 세상을 향한 봉사이며, 전도의 방법은 개종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다.

선교선언 83항은 “전도는 우리의 믿음과 확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고수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들을 제자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전해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평화에 있기 때문에 WCC는 다양한 그리스도교 내 종파는 물론, 타종교인들도 전도가 아니라 연합과 포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선교선언 94항은 종교간 대화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나온다. “종교적 차원에서 대화란 우리보다 앞서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그들과 함께 현존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그곳에 계시기에, 우리의 과제는... 이미 선재하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슬람, 불교, 힌두교, 도교 등 타종교 신봉자들의 삶과 전통 안에서도 하나님이 활동하고 계신다는 뜻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한다고 치부될 수도 없는 것이다.

19.케이프타운 로잔대회

로잔대회가 WCC의 신학에서 혼합주의적인 면, 선교적인 면에서 종교 다원주의적인 견해에서 복음주의 진영과 대치되는 상황에서 중간적 해소 공간을 마련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기회로 말마암아 복음주의 진영은 개인 영혼전도와 더블어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사회참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WCC는 좀더 성경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양자 진영간에 일부분을 교차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기도 하였다. WCC진영은 개인 영혼구혼을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데 선교의 다양성을 강조하다 보니,환경보호,인종차별,가난,고통,사회정의,인권문제,정치문제,사회문제,심지어 여성인권 문제까지 깊이 관여하여 영혼구원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따라서 로잔서약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할 것을 강조하게 된다. 보수주의 진영도 인간사회에 구조적인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인간의 개인적인 죄악만 지적하고 회개만 부르짖었다.오직 개인적인 회심만이 사회악을 치료하는 첩경이라는 신학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런면에서 케이프타운 로잔서약은 보수주의 진영과 WCC진영간이 서로 교차하는 가교역활을 했다고 보여진다.